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35)
JINRO - 앞으로 나아갈 길 -비초 Bcho- 술은 지금 아픈 게 맞다고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해. 오늘을 망념의 최면에 빠져들게 만들어. 그래야 내일이 평안해지니까. 사실 뭐든 할 수 있는데 도피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몽롱하게 만들어. 술이 없이 보내는 평범하고 맑은 하루가 상쾌함에 쓸쓸해져. 오늘을 살아버린 하루가 수치심으로 괴롭게 조여와. 다시 술에 잠겨. 목구멍 끝에서 턱턱 막혀도 억지로 털어 넣어. 제정신이 무서워 술을 마셔. 계속 도망갈 수 있도록. 술은 이유고, 술 마신 너를 결과가 되게 해.그렇게 하루하루를 갉아먹고 파헤쳐. 구렁텅이에서 바닥을 찍고 다시 일어선다지만, 그곳엔 끝이 없어서 바닥을 찍을 수 없어. 어디까지 왔을지 가늠이 안돼. 다시 돌아갈 길이 너무 멀까 봐 또다시 술을 찾아 망념의 최면을 걸어...
사랑에 대한 일기 -비초 Bcho- 겨울 바다로 향하는 아빠의 차 뒷좌석에 앉은 나는 복슬복슬한 털 코트를 입고 있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다 갑자기 어린것의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낭떠러지로 차가 구르면 어쩌지? 옆 차선에서 커브를 돌다 우릴 못 보면! 차가 우리한테 돌진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복슬거리는 코트를 팡팡 두들기다 푹신해서 웬만하면 죽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사고가 나면 앞좌석으로 몸을 날려 엄마를 꼭 안아줘야지. 아빠는... 튼튼하니까 괜찮을 거야. 아니면 둘 다 안아줘야지. 나만 푹신한 코트를 입었으니까. 나는 엄마 아빠보다 빠르니까. 사랑은 이런 거니까. 내 목숨을 바칠 수 있어. 그때의 나는 목숨을 희생해도 아깝지 않은 것이 사랑이라 믿었다. 조금 더 자라 순정만화에..
어른은 갱신형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비초 Bcho- 푸른 모가 쑥쑥 자라 이삭 가지에 낟알들이 영글어꼭 푸른 청춘이 지식과 경험을 흡수해 스며들듯점점 성숙히 여물어 지혜가 되고 슬기가 쌓여. 깨달음과 깨우침이란 단어가 얼만 큼의 무게와 깊이인지 안다면, 세상을 조심스레 대해.겸손은 그렇게 배어나. 내가 모르는 분야를 많이 알아서 어른이 아니라 다양성의 넓음을 이해하고,경솔히 단정 짓지 않고, 쉬이 결론 내리지 않고, 반대되는 생각과 다른 시각들의 회로를 들여다보는 사람. 나이가 적다고 괄시하지 말아야 하고, 나이가 많다고 우러러볼 필요 없어. 짧은 경험에도 빠르게 습득하기도 하고, 아는 것의 그 이상은 없단 듯 평생을 아는 척하기도 해. 여지와 실제 열린 공간의 배움 길은 늘 갱신되고, 마음을 닫고 세상을 좁..
살아 -비초 Bcho- 내일이 없어도 상관없을 만큼 오늘을 살아 앞날을 걱정안하며 오늘을 살아 사실 오늘도 상관없어 그냥 살아 어디 아픈 곳이 없어도 만사가 귀찮아 그냥 무기력해 생각이 귀찮아 눈을 깜빡이는 것도 숨 쉬는 것도 귀찮아 여기는 어디지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데 내 있을 필요는 있기는 한가 눈을 감고 있으면 편해 엄마 뱃속 그 느낌인가 그럼 다시 그 자세로 웅크려 눈을 감아 걱정도 상관도 없다면서 오늘을 살아왔네 살았어 끝은 뭐지 끝낸다는 건 어떤 걸까 편할 거 같은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하나 뭐 이렇게 귀찮게 되어있는 거지 그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되겠다 더 웅크리고 숨어야지 아무도 나를 모르게 나를 지워야지 살아가지 말아야지 ..
강호동님의 조언 -비초 Bcho- 어릴 땐 외모나 선입견으로 판단 않고 누구나 공평하게 대하는 게 옳다고 믿었습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 건 갖춰야 할 자세지만, '공평'에 대해 선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예의로 꾸며낸 가식적인 모습들이 생각보다 길어지면 혼란스러웠습니다. 일할 때의 모습이나 친구들과의 모습들, 이건 내 모습이 맞나. 혼자 있을 때가 내 모습인가. 이런 상황도 공평하게 대하지 않아서 생기는 건가 하는 고민.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사람에게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공평하게 대하다 우스운 꼴이 되어서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운동선수도 말이야. 상대에 따라 전략을 바꿔 경기해. 아무리 주특기가 뛰어나도 그걸 파악하고 오는 상대에게 똑같이 승부했다간 져.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야. ..
착한 병 -비초 Bcho- "미안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것 좀 부탁할게.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사과를 받으면 승낙을 해줘야 하는 입장에 놓여. 그래서 괜찮다는 말은 많은 의미를 담아. 그러다 슬며시 생각이 많아지게 해. 그리고 마음이 텅 빈 말이 되게 해.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 상대 마음을 후련하게 해줘야 하는 말. 사과를 받았으니 너그럽게 포용해줘야 하는 말. "야, 미안해." "... 어." "괜찮아"라고 화답할 필요 없어. 괜찮지 않은 건 말 습관에서부터 줄여나가. 사과는 사과로만 끝낼 수 있게끔. 나를 위할 새도 없이 남을 위하고 버거워도 거절하지 못하고 너그러운 척하는 건 착한게 아니야. 착한 게 병이 아니라, 착하다를 낮잡아 말하면서 모든 걸 착하다로 싸잡고, 이용해 ..
타인에게서 나와야 좋은 말들 -비초 Bcho- 최선을 다하겠단 말 열심히 하겠단 말 더욱 노력하겠단 말보다 그냥 해오던 것들이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했고, 노력했다 라는 다른 사람의 말들로 돌아오는 게 좋아. 고민하고 좌절하고 다짐하고 비교하고 점검하고 확신하고 따라도 해 보고 물어보고 찾아보고 저질러도 봤던..., 이 모든 과정들이 그 말들을 있게 해. 이제껏 해오던 것을 파도 속으로 갈아버리고, 영혼도 없는 말 뿐인 각오를 내뱉게 하는 사람에게 너의 가치를 평가받았다는 착각은 하지 않기를. 나에게 들려주는 말이 아닌 타인에게 들려줘야 하는 말들은, 나에게서 나오는 말이 아닌 타인에게서 나와야 좋을 말들. 넌 늘 최선을 다 했어. 죽도록 열심히 했어. 넘치도록 노력했어. 정말 잘해왔어. 너의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아. 잘 견뎌왔어..
감정이 유연한 지점 -비초 Bcho- 못 본 척 지나가던 일들이었는데 안 본 척 참아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부터 너도 모르게 쌓이기 시작해. 어설프게 아닌 척 흉내 내는 건 오래가지 않아. 참는다는 건 언제고 터져 나와. 누군가 툭 치며 널 부르는데, 언제는 그냥 돌아보게 되던 게 갑자기 짜증이 나더니 화가 나기도 해. 그러다 또 아무렇지 않아 져. 유연하게 유지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너도 모르게 변해가는 감정의 기복을 알 수 있는 지점들이 있어. 어느 날 그냥 지나치다 참아온 일들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면 그 지점이야. 그 지점 이상 가면 통제가 잘 안돼. 갑자기 뭔가를 깨뜨리거나 부숴뜨리면, 오늘은 잘 되던 일도 안 풀리는 날인가 보다 하면서, 그날은 무조건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하는 날이라고들해. 감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