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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 맘 공허한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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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에 대한 일기 -비초 Bcho- 어릴 적 동네 끝자락 전파사 가게 뒤편에 비가 오던 날이었다. 전파사 뒷문 앞에 있던 하수구 조금 옆에 아주 작은 생쥐 한 마리가 오들오들 떨면서 비를 맞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록 눈도 피하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내 어린 새끼손톱보다 작은 앞발을 떨면서 그렇게 나를 보고 있었다. 어린것이 왜 이리 생각이 많았을까. 집에 데려와 키울 생각도 하다가 쥐는 병균이 많아 만지면 안 돼. 번식력이 좋아서 엄청 엄청 불어날 거야. 이미 엄마한테 어떻게 혼날지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살짝 무릎을 굽혀 고개를 숙이고 그 작은 생쥐와 눈을 몇 초간 마주치다 그렇게 지나쳤다. 몇십 년도 훌쩍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 생쥐가 떠올라. 난 왜 도와주지 못했을까. 내가 손해 ..
너를 함부로 대하지 마 -비초 Bcho- 뭔가 따끔하는 느낌에 팔을 올려봤어. 어디에 긁혔는지 손에 기다란 상처가 생겼더라. 가만 놔두면 저절로 아물겠지, 하고 별일 아닌 듯 놔뒀어. 눈치 못 챘을 땐 모르겠더니 계속 쓰라리고 욱신거려.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줬어야 했는데, 그럴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았어. 누군가 깨진 유리에 손가락이 베여서 피가 났어. 다가가 괜찮냐며 손가락을 심장보다 위로 들라고 하고 연고와 밴드를 가져다줬어. 이대로 두면 상처를 계속 건드릴 거고 더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는데 내 팔을 유심히 보고 있더라. 그 사람이 이렇게 큰 상처를 왜 그냥 놔두고 있냐고 묻길래, 나는 이런 거에 익숙해서 괜찮다고 너스레를 떨었어. 그랬더니 그 사람이 날 빤히 보다 이렇게 말했어. 상처는 날 때마다 아파. 그러니까..
잘못 뀄던 단추로 기억하는 사람에게 -비초 Bcho- "이야, 너 좀 변했다? 너 원래 이런 애 아니잖아. 예전하고 너무 바뀌었는데?" "그래. 맞아 나 좀 변했지. 넌 어떻게, 여전하니?" [어둔 맘 공허한 잔소리/인간관계] - [어둔맘] 열매가 단단해 지는 과정
열매가 단단해 지는 과정 -비초 Bcho- 앞을 못 보는 이는 해를 모르고 눈부심을 모른다. 앞을 보는 이는 해를 보면 눈이 부시고, 앞을 보는 척하는 이는 해를 아는 척 눈부심을 연기한다. 모든 걸 알고 헤아린다 착각 하지만 아는 척의 연기는 곧 탄로 난다. 그들은 잔디 같이 강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어디에나 있지만, 간섭할 이가 없으면 말라죽어간다. 당신은 열매가 되어가는 중이다. 꽃망울이 열리고 활짝 피어나던 꽃은 점점 시들어 옹 그러 진다. 누군가는 오래도록 활짝 피지 못한 꽃이었음을 비난하면서 스스로를 상처 내고 곰팡이를 피게 할 것이다. 앞이 보이는 척하기 때문이다. 옹 그러진 꽃은 그 속에서 작은 결실을 맺어낸다. 그 결실이 점점 커지면, 저마다의 탐스러운 모양과 색을 가지며 모두가 탐내고 먹어보고 싶은 잘 익은 과육..
갈피를 못잡고 휘둘린다면 -비초 Bcho- 사람은 자기중심을 찾지 못한 오뚝이 같아. 우르르 휩쓸리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정신없이 굴러다녀.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점점 의지하는 힘이 버거워지다 무게가 감당이 안되면 버티지 못할 거야. 한쪽만 기대는 관계는 다른 쪽의 중심을 흔들리게 하니까, 그렇게 밀어내 지겠지. 그럼 전보다 더 휘둘리고 굴러다녀. 살이 쓸리고 베여도 멈추지 않고 나뒹굴어. 그냥 그곳부터 네 발끝으로 디디고 서. 삐딱하게 시작한 너를 비웃는 이도 있겠지. 중심도 없는 화려한 색의 오뚝이들이 널 초라하게 여길 수도 있어. 그럴 바에야 완벽한 중심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겠다며. 중심을 잡는 건 제대로 된 방향을 알게 되는 계기가 돼. 완벽하려 하지 마. 삐딱하더라도 휘둘리고 굴러다..
불안정한 감정이 부풀어 오를때 -비초 Bcho- 가끔 아니면 자주, 가득 부푼 풍선처럼 감정의 여유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때가 있어. 모든 신경 레이더가 곤두서서 작은 진동에도 민감해진 상태. 스치듯 닿아도, 살짝만 건드려도, 살며시 두드려도 요란하게 빵 터져. 별것도 아닌 것에 바로 화가 나고, 웃는 게 힘들 정도로 한바탕 웃어야 되고, 가만있다가도 눈물이 주르르 흐를 때, 너 조차도 모르게 별일 아닌 줄 알았던 지나온 일들이 차곡차곡 모아지고 있던 거야. 그럼 그때에 너는 가득 부푼 풍선에 바람을 빼야 할 때야. 기간, 속도는 상관없어. 대신 몇 텀 정도를 빼야 해. 한 텀 정도 말랑해진 때를 제일 조심해. 안심하고 내뱉은 네 한 숨에 어이없게 터져버리거든. [어둔 맘 공허한 잔소리/쓸쓸함] - [공허한] 까만 밤에 홀로 빛나..
까만 밤 홀로 빛나는 별 -비초 Bcho- 나는 까만 밤하늘에 홀로 떠있는 작은 별이야. 계속해서 나를 반짝이지만 너는 환한 별무리들을 바라보느라 나를 좀처럼 보지 못하지. 그런데 가끔 내게로 눈을 돌려, 허하고 고되었던 맘을 안고 고요하게 바라보다 가곤 해. 하지만 곧 너의 눈동자는 환한 별무리로 가득 차. 네 시선이 머물렀던 곳의 주위가 잠시 동안은 더 까매지겠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나를 반짝여. 네가 나에게로 한 발짝씩 더 가까워진다면, 그래서 바라보기보다 자세히 나를 보게 된다면, 내가 얼마나 멀리서부터 너에게 반짝이고 있는지 알게 될 텐데. 내가 사실은 엄청 큰 별이란 걸 알게 될 텐데. 나는 까만 밤하늘을 혼자 밝히는 별이야. 언젠가 네가 나에게 와 닿게 되는 날, 내 큰 별을 꼼꼼히 소개해 주고 싶어. 그래서 나를 ..
신경을 건드리는 사람 -비초 Bcho- 끊임없이 떠오르는 불편한 생각들이 연료가 되어 드글데는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항상 그 열기에 갇혀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찬물이 확 끼얹어지고 연료들은 순식간에 공중분해되었다. 머릿속이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후에 나의 연료였던 잔해들이 누군가를 지목했다.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작 너였다. 우습게도 정말 고작이었다. 네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더라. 매일을 신경을 긁었던 네가 한없이 작고 초라해보였다. 내가 아파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었다. 몸이 가볍다는 말이 이렇게 들어맞는 날이 없었다. 열기에 갇혀 너와 있던 일들을 곱씹으며 나를 괴롭혀왔던, 잠이 사라졌던 그 많은 날들이 아까워졌다. 애초에 네 못된 말과 네 못난 표정의 이유를 나에게서 찾았던 게 어리석..